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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대중음악 시대, 비엣팝(V-Pop)과 제이팝(J-Pop) 열풍

조금은 낯선 노랫말이 인기다. 베트남 음악과 일본 음악이 숏폼 영상을 활로로 국내에 상륙했다.

호앙투링 ‘See Tinh’ 뮤직비디오 캡처     요네즈 겐시 ‘Kick Back’ 

아이묭 ‘사랑을 전하고 싶다든가’    파오 ‘(KAIZ Remix)’  

이마세 ‘Night Dancer’ 

 

‘제로투’ 말고 ‘띵띵땅땅’

‘띵띵땅땅띵, 띵띵 땅땅땅···’ 배구 선수 이다현도,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출연진도, 유명 케이팝 스타들도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2022년 후반기부터 틱톡을 시작으로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 숏폼 플랫폼을 장악한 곡의 위력이 거세다. 유튜브 조회수 4900만 회 이상을 기록한 베트남 가수 호앙투린(Hoàng Thùy Linh)의 ‘See Tinh’ 이야기다. 차분한 디스코 R&B 기반의 몽글몽글한 사랑 노래이던 원곡을 베트남 DJ 쿠캣(Cucat)이 춤추기 좋은 댄스곡으로 리믹스해 공개했는데, 틱톡 유저들이 이 노래에 맞춰 춤추는 것이 소셜미디어에서 폭풍 같은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에서만 40억 회 이상 조회되었다는 이 노래가 한국에 상륙하며 베트남 음악 시장의 위력을 널리 알렸다. 호앙투린은 베트남 대중음악의 슈퍼스타다. 유튜브 구독자 수는 146만 명을 돌파했고, 틱톡 팔로워는 52만 명이 넘는다. ‘See Tinh’ 발표 이전 공개한 노래의 뮤직비디오 기본 조회수가 1000만 회 이상이다. 9747만 베트남 인구보다 많은 1.7억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2019년 발표곡 ‘ĐểMị Nói Cho Mà Nghe’를 으뜸으로 베트남 래퍼 덴(Đen)과 함께한 ‘Gieo Quẻ’(5473만), ‘See Tinh’의 성공에 힘입어 더욱 화려하고 거대한 무대를 갖춘 댄스곡 ‘Bo Xì Bo(Pause Pause)’(2471만) 모두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베트남 대중이 호앙투린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순탄치 않은 연예계 경력 때문이다. 사실 그는 10대 시절부터 걸 그룹 멤버로 활약한 베테랑 연예인이며, 2007년 열아홉 살 나이로 인기 시트콤 <방안(Vang Ahn)>의 주연을 맡으며 베트남의 국민 여동생으로 거듭난 스타였다. 하지만 인기 절정의 순간에 남자친구와의 성관계 영상이 유출되며 최악의 시기를 맞았다. 유교 사상이 강한 베트남 사회에서 호앙투린은 피해자였음에도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연예계에서 퇴출되었으며, 대중의 질타를 견뎌야 했다. 사건 발생 3년 후 그는 극적으로 가수로 컴백했고, 성실한 활동과 뛰어난 실력으로 대중의 마음을 돌리고 억울함을 벗으며 더욱 큰 지지를 받게 되었다. 베트남 전통 수상 시장과 메콩강, 분주한 호찌민과 하노이의 도심 풍경을 적극적으로 담아내는 호앙투린은 자국민의 굳건한 성원을 바탕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비엣팝의 급성장

베트남전쟁 이후 남베트남이 패망하면서 서구의 대중문화가 베트남 땅에서 사라졌지만, 그로부터 20년 후인 1995년 베트남 정부가 개방 정책을 펼치며 각종 시상식과 젊은 가수들의 활동을 장려하면서 베트남 대중음악 시대의 막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이후 30여 년 동안 베트남 대중음악은 탄탄한 내수시장 소비를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 음악에서 스타를 배출했다. 초기에는 홍콩의 광둥 팝 음악, 서구의 R&B, 서정적 멜로디가 특징인 베트남 전통음악 바탕의 발라드가 주를 이뤘다. 2000년대 최고 전성기를 누리며 일본 진출까지 성공한 여성 가수 미땀(Mỹ Tâm)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비엣팝 스타다. 2000년대 동남아시아를 휩쓴 한류 열풍과 케이팝은 비엣팝에 화려한 퍼포먼스와 비주얼 요소, 칼 같은 안무와 완성도 높은 종합예술의 영감을 제공했다. ‘베트남의 지드래곤’이라 불리며 유튜브 구독자 1030만 명을 자랑하는 래퍼 선뚱 엠티피(Sơn Tùng M-TP), 베트남 대중음악 유튜브 최고 조회수 5.6억 회를 자랑하는 곡 ‘Bống Bống Bang Bang’을 부른 보이 그룹 365다밴드(365daband) 등이 인기를 누렸다.

 

‘제로투 댄스’로 본 비엣팝의 저력

베트남은 장르 음악에서도 강하다. 특히 전자음악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인다. ‘See Tinh’의 성공도 일렉트로닉 댄스 리믹스 음원의 폭발적 인기 덕분이었다. 2020년 한국에서 유행한 ‘제로투 댄스’의 원곡도 베트남 가수 파오(Pháo)가 부른 ‘Hai Phút Hơn’의 카이즈(Kaiz) 댄스를 리믹스한 것이다. 베트남의 언더그라운드 하우스 음악을 지칭하는 비나하우스(Vinahouse)는 2000년대 말부터 하노이, 호찌민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해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비록 베트남의 전자음악 창작이 기존 노래를 단순히 빠르게 만드는 것뿐이라는 비판도 많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그런 작법이 자유로운 음원 재해석과 짧은 시간 내 춤추기 좋은 음악을 선호하는 틱톡의 흥행에 강점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스페드업(Sped-Up)이라 불리는 속도 높이기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제이팝의 부활

2022년부터 한국에서 급격한 관심을 받고 있는 제이팝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부터 일본 음악은 한국 대중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오랜 시간 동안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했다. ‘제이팝 열풍’이라는 최근 기사 제목에 많은 이가 의구심을 갖는 이유다. 최근 불고 있는 제이팝 흥행은 2010년대 초중반부터 케이팝이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관심의 중심으로 떠오른 가운데 식었던 제이팝에 대한 관심이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라 해석해야 한다. 그 증거는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 무서운 기세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 싱어송라이터 아이(あいみょん)의 현재 최고 인기곡은 그가 2017년 공개한 싱글 ‘사랑을 전하고 싶다던가(愛を伝えたいだとか)’다. 6월 24일 한국을 찾는 싱어송라이터 후지이 카제의 ‘죽는 편이 나아(死ぬのがいいわ)’는 2020년 인기 싱어송라이터 하현상과 아이돌 예나, 걸 그룹 프로미스나인 하영이 커버한 밴드 오피셜히게단디즘(Official髭男dism)의 ‘Pretender’는 2019년 발표곡이다.

 

일본 문화 콘텐츠의 힘

화려한 비주얼과 복잡다단한 세계관, 강성한 댄스곡으로 승부하는 케이팝 음악의 대안을 찾는 Z세대에게 국내에 소개될 일이 많지 않았던 제이팝의 세계는 보물 같은 곡으로 가득 채워진 선물 상자다. 가시화되지 않았을 뿐 이미 2020년대 초부터 제이팝의 인기 조짐을 여러 곳에서 포착할 수 있었는데, 그 핵심에는 넷플릭스와 디즈니+ 등 국내에 서비스되는 OTT를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과 영화 등 문화 IP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이 있었다. 인기 애니메이션 <도쿄 리벤저스>, <체인소맨>, <스파이 패밀리> 등이 한국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며 자연히 작품의 시작과 끝을 자랑하는 노래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익명의 유튜버들이 자발적으로 업로드하는 가사 해석 영상과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꾸준한 제이팝 커버가 오늘날 제이팝 열풍의 연료가 된 것이다. 2023년은 한국 내 제이팝 활약의 원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3)에 대한 뜨거운 성원, 일본 영화 최초로 국내 500만 관객을 넘어선 <스즈메의 문단속>(2023)을 통해 일본 문화 콘텐츠에 대한 선호가 최고조에 달했다. 일본과 한국의 인기 가수 시차도 점점 일치하는 모습이다. 틱톡을 통해 슈퍼스타로 거듭난 신예 가수 이마세(Imase)는 ‘Night Dancer’로 한국 스트리밍 서비스 차트에 진입하는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호소력 짙은 음악을 들려주는 유우리(優里), 인기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극장판 <필름 레드>의 주인공으로 나선 얼굴 없는 가수 아도(アド)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진정한 글로벌 뮤직의 시대가 온다

시간과 장소, 국경의 편견 없는 대중음악이 공존하는 오늘날이다. 많은 이가 춤을 따라 추며 방송에도 소개되고 있는 ‘Toca Toca’는 2013년 10월에 발표한, 루마니아 그룹 플라이 프로젝트(Fly Project)의 노래다. 한국의 인기 크리에이터 닛몰캐쉬가 중국 틱톡 사용자들의 영상을 흉내 내어 유행으로 자리 잡은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 챌린지의 배경음악은 2004년 중국 가수 한뢰의 ‘하늘에서 다시 오백년을 빌려(向天再借五百年)’다. 케이팝에서도 전 세계 Z세대의 소셜미디어 피드를 장악한 케이팝 곡이 나왔다. 5월 셋째 주 기준 빌보드 핫 100 차트 19위에 오르며 케이팝 빌보드 차트 흥행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걸 그룹 피프티피프티의 ‘Cupid’다. 무한 경쟁과 무작위의 흥행 가능성이 어지럽게 공존하는 현재의 미디어 시장은 주류 팝 시장 이외의 제3지대에도 동일한 기회를 제공한다. 전통의 강호 제이팝, 무서운 신예 베트남의 비엣팝이 현재 주목받고 있다. 추후 어떤 국가의 음악시장이 고유의 매력을 바탕으로 새로이 떠오를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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