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환 교수는 “재활의학과 의사는 공적 위치에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 가지 덕목을 제시했다. 많이 알아야 하고, 소통해야 하며, 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의사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재활의학과 의사는 환자의 회복을 마무리하는 ‘최종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이다. 각종 분과의 의사들과 긴밀히 소통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의 정상적 생활을 위해 꿋꿋하게 이끌어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힘은 뭘까. 김창환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 가부장 사회에서는 전문가가 하는 말이라면 환자가 모두 믿었다. 그러나 요즘은 아무리 신뢰할 만한 의사라도 실제 행동으로 보여줘야 믿는다. 의사가 솔선수범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김창환 교수는 평소 지하철을 이용한다. 환자에게 일상 속 운동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10년 넘게 저개발 국가들 찾아 봉사 활동을 하면서 현대 의학을 보급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저개발 국가의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들에게 교육과 훈련의 기회를 제공해 질 좋은 의료활동을 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셈이다.
이 모든 건 그의 작은 꿈에서 비롯됐다. “재활이 병원에서 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병원 밖으로 나오면 훨씬 넓은 영역에 접촉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병원 밖에는 아직 우리가 해내지 못한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이제 의사들에게도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합니다.” 재활의학의 더 큰 역할을 꿈꾸는 김창환 교수. 그는 과연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명의’로서 인터뷰 요청을 하자 극구 사양했다. 이유는?
명의라니, 거창한 표현 같다. 대단한 성과를 냈다고 동네방네 알리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그저 묵묵히 내 일을 해왔을 뿐이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명의의 조건은 무엇일까?
요즘 명의는 그 의미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내가 교수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의학 자료가 제일 많은 곳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도서관이었다. 거기 직접 가서 진단하고 싶은 질환이 담긴 논문을 찾는 것이 일이었다. 원하는 자료를 찾았다면 또 일일이 복사해서 갖고 다니며 공부하고, 해당 내용을 발전시켜 새로운 논문을 쓰는 게 당시로는 가장 첨단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의사 개개인의 비법이 나왔다. 일종의 ‘비방’ 같은 개념이다. 그게 세상에 알려지면 명의라고 소문나는 거다.
하지만 인터넷 발달로 인류의 지식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랩톱, 태블릿 등이 있으니 더는 무거운 책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도서관에 직접 가서 일일이 찾을 필요도 없어졌다. 그래서 요즘 의대생들은 우리가 의대 시절 배운 양의 네 배를 학습한다. 그 과정에서 비법, 비방이라고 일컫던 것들도 하나둘 표준화됐다. 더 이상 어느 한 의사가 갖고 있는 방식이 없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신 넘쳐나는 데이터, 즉 빅데이터를 많이 갖고 있으면서 그걸 잘 활용할 줄 아는 의사가 명의가 된다.
진료 시간이 짧은, 이른바 ‘3분 진료’ 같은 말이 나온 것도 그런 트렌드의 일환일까?
아무래도 연관되어 있다. 의사 개개인이 빅데이터를 많이 모아야 하니까 본인 관심 분야의 환자들에 한해 유심히 보는 경향이 있다. 그 외 환자들은 3~5분 안에 빠르게 진료한다. 특정 질환에 맞는 최적의 처방, 치료 방법 등이 이미 표준화되어 있어 진료 시간이 길지 않더라도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빅데이터 중심 시대가 될수록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냉랭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 ‘휴먼 릴레이션십’을 가질 수 없는 시대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유럽 등 의료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개혁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프랑스, 영국, 스위스 등의 국가에는 ‘인격의학회’라는 단체도 만들어졌다. 의사가 점심시간을 이용해 환자와 긴 시간 만난다거나 레스토랑에 환자를 초대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의료의 비인간화를 막자’는 것이 주요 취지다.
휴먼 릴레이션십이 강한 분과는 아무래도 재활의학과가 아닐까?
그렇다. 국내에 재활의학과가 생긴 건 40년 전이다. 당시에는 ‘수익을 내지 못하는 과’로 인식되면서 병원들이 도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 생각할 때는 얘기가 다르다. 삶의 질을 높여주는 데 이만한 과도 없다. 재활치료를 한 환자들은 독립성, 자율성을 갖게 된다. 예를 들면 누워서 음식을 먹는 사람보다는 앉아서 먹는 사람이 자율성이 높고, 앉아서 먹는 사람보다는 식당에 가서 먹는 사람의 자존감이 더 높다. 화장실을 출입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결국 사람의 독립성, 자율성, 자존감 등에 큰 가치를 둔다는 점에서 재활의학과는 다른 과에 비해 휴먼 릴레이션십이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다.
환자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연구를 했나?
‘말초신경학’을 새로 전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분야라 미국에서 유학했다. 신경에 발생하는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재활, 즉 환자가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신경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현재 말초신경학을 다루는 국내 의사는 재활의학과와 신경과에 몰려 있다. 그중 신경과가 뇌에 집중한다면, 재활의학과는 뇌를 비롯해 신체 전반의 신경을 다룬다. 전국에서 말초신경을 보는 재활의학과와 신경과 의사는 100명쯤 된다.
최근 재활의학의 트렌드는 신경부터 치료하는 쪽으로 발전한 것인가?
글쎄, 트렌드라고 말하기에는 거창한 것 같다. 신경부터 치료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순전히 개인적 판단이었다. 재활의학을 전공하면서 신경과 근육의 문제를 가장 많이 접하게 됐고, 그 다음이 관절과 골절, 심장 호흡기 환자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혈관 문제로 중풍이 오기도 하고 하반신 마비, 사지마비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신경을 직접 재생시키는 약은 없다. 뇌나 말초신경의 남아있는 세포들이 새로운 연결과 재생을 통해 기능이 회복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연결이 기능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수천에서 수십만번의 연합된 운동을 통해 새로운 기능을 획득해야 한다. 상황이 이러한데 재활의학과 의사가 각종 신경질환을 모르면 되겠는가. 그래서 유학을 결심했다.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유학 기간은 1년이었다. 공부는 매우 즐거웠다. 미국 현지에서는 대학에서 일하기를 제안받기도 했지만 고향이 그리웠다. 내가 아무리 유명해져도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 만나 얘기하고 사는 게 인생에서 더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 길로 귀국했다.
신경을 살리는 약은 없다면 재활로 어느 정도 살려낼 수 있나?
신경은 계속 성장한다. 끊어졌던 신경도 재생되어 몸속 어딘가로 찾아가기 마련이다. 이때 잘 찾아가도록 가이드해 주는 것이 재활이다. 신경이 잘못 찾아가면 다른 신경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눈을 깜빡이는데 입술이 같이 움직인다. 특별한 운동 방법을 개발해 환자들을 훈련시키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것도 통하지 않으면 약물 치료에 들어간다.
재활의학과 의사가 되기로 한 계기는?
원래 꿈은 의사가 아니라 수도자였다. 봉사하는 삶이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종교인으로 사는 것보다 의사로 살면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의대에 진학했고, 휴먼 릴레이션십이 강한 재활의학과를 택했다. 대학을 다니는 내내 일주일에 1~2일은 신학, 철학, 인문학을 별도로 공부해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려 했다. ‘의사 수도자’로서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의사로 남아 있으면서 봉사 등 더 많은 사회 경험을 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지금에 이르게 됐다.
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빨간불이 켜진 상태인 거다.
‘멈춰 섰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 ‘몸은 아프고 힘들고.
이게 내 인생을 얼마나 바꿔놓을지 알 수 없어’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의사가 과학적인 사실 한두 마디를 나열해 준다고
그 사람의 삶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
이때 의사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이냐 하면
‘그래도 가보자. 함께 노력해 보는 게 좋지 않겠나’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의사가 라이프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은
그런 환자의 삶 전반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봉사하러 오지에도 많이 다닌 걸로 알고 있다
2002년 인도를 시작으로 몽골,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등지로 꾸준히 의료 봉사를 다녔다. 처음에는 해외 오지를 찾아 들어가 환자를 봐줬는데, 현장에서 겪은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인프라는 말할 것도 없고 의료진도 턱없이 부족했다. 단순히 일회성으로 환자를 봐주고 끝낼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2004년부터 10년간 매년 몽골에 건너가 의료진을 교육했다.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16시간 떨어진 오지였다. 현지 의료진을 교육하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10년간 의사를 교육하고 인프라를 공급한 결과 지금은 400병상의 그럴듯한 종합병원이 됐다. 매우 보람찬 순간이었다. 최근에는 마다가스카르의 의료진 교육에 힘쓰고 있다. 의료 인력이 확보되면 의료보험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목표다.
인문학 공부, 봉사 등 의학 이외의 공부가 재활의학과 의사로서 일에 도움이 됐는지 궁금하다
도움이 많이 됐다. 무엇보다 환자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갖게 됐다. 예를 들면 엑스레이 하나를 보더라도 그 사람의 삶을 읽을 수 있게 됐다. 타인의 라이프 스토리를 알아볼 수 있다는 건 재활의학에서 굉장히 큰 장점이다. 환자가 겪는 문제가 단순히 의학적인 부분을 넘어 삶의 문제에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안다면 더 나은 재활 방법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의사가 라이프 스토리를 안다는 건 ‘환자에게 독립성을 만들어준다’는 재활의학의 목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환자 개개인에 맞는 재활도 가능해진다. 재활은 더 이상 단순히 움직이고, 말하고, 듣는 활동만이 아니다. 삶의 독립성을 어떻게 만들어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고, 답을 내려면 굉장히 인문학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나는 수도자를 꿈꾸며 해왔던 공부를 통해 그런 인사이트를 배양한 것 같다.
의사의 ‘환자 라이프 스토리텔링’ 역량은 앞으로의 의료 트렌드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최근 병원에 도입한 ‘원스톱 진료 체제’가 좋은 예다. 원스톱 진료 체제는 주치의 한 명이 다른 여러 분과 의사들과 소통해 종합적인 진단을 한 번에 환자에게 내려주는 시스템이다. 환자 개인이 진료받을 때는 여러 과의 스케줄에 맞춰 다녀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반면 주치의는 동료 의사들과 소통할 수 있으니 빠르게 의견을 취합할 수 있다. 이때 주치의는 환자의 라이프 스토리를 꿰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환자가 제일 힘들어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환자의 생활수준부터 일상 패턴, 가구의 종류까지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건 신체뿐 아니라 정신 영역의 통증까지 잡는 데 너무나도 중요한 요소다.
지금도 인문학 공부를 하나?
물론이다.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데, 그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무조건 책을 읽는다. 주로 보는 것은 원전이다. 해당 글을 쓸 때 그 작가가 겪은 시대 상황 등을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서다. 인용문 위주로 보면 내용만 알뿐 그 배경과 사상, 지혜를 습득하는 데는 미치지 못한다. 그건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라이프스타일을 스토리텔링할 때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어떤 사건이든 배경과 역사를 이해해야 문제를 해석할 수 있다. 나는 수십 년 동안 원전을 읽으며 사건 뒤에 얽힌 배경을 해석해 오다 보니 지금도 환자를 볼 때 습관적으로 그의 속사정까지 고려해 대화한다. 그건 인문학과 재활의학의 좋은 시너지라고 생각한다.
재활의학과 의사로서 아프지 않고 사는 법을 알려준다면?
두 가지 의견이 있다. 일상생활의 활동을 확장하고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의견과 운동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한다. 둘 다 가치가 있다. 운동을 중심으로 하면 심폐 기능과 근육이 발달하면서 건강해진다. 반면 청소를 하고, 조그마한 화단을 가꾸거나, 동네를 산책하고, 일부러 조금 떨어져 있는 상가에 가는 등 일상생활의 패턴을 바꾸기만 해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둘 다 해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대표적인 방법에는 ‘하루 1만 보 걷기’가 있다. 일상 속 움직임을 늘리면서 심폐 기능을 향상시키는 운동도 된다. 나 역시 하루 1만 보 걷기를 실천하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지난 3년간 자가용으로 다니면서 심폐기능이 많이 저하됐다. 다시 지하철을 이용하며 걷기, 가벼운 달리기로 회복하고 있다.
아무래도 재활의학은 삶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분야인 것 같다. 앞으로 계획이 있나?
올가을부터 대한노인재활의학회 회장직을 맡게 된다. 실제 활동은 2024년 봄 학회부터다. 늘어나는 시니어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의료적 지원뿐 아니라 행정 등 각종 제도까지 마련하고 싶다. 그러려면 각종 사회단체와 정부 기관, 언론 등 행정적 활동을 많이 할 것 같다. 물론 마다가스카르 봉사나 재활의학과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는 소명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향후 2년은 인생에서 굉장히 바쁜 나날이 될 것 같다.(웃음)
재활의학의 목적은 환자에게 독립성을 부여하는 데 있다.
환자가 일상생활을 할 때
‘독립적으로 움직이려면 어떻게 도와야 할 것인가’는
재활의학의 가장 큰 고민이다.
그걸 위해 재활의학과는 수많은 학문, 정치, 제도 등과 융합한다.
그것이 재활의학의 본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