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은 완치가 아닌 꾸준한 관리가 중요
단순히 오래 살기만 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저 생명만 연장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이동하고, 건강하고 즐겁게, 그리고 존중받으며 사는, 즉 삶의 질이 더 중요한 시대다. 보통 70세가 되면 20대 청년기에 비해 수분, 근육, 무기질의 양은 감소하고 지방은 2배 이상 증가한다. 지방 분포도 바뀌어 피하지방은 줄고 복부 내장지방은 늘어난다. 이에 따라 각종 질환이 발병하는데, 개인의 건강 상태나 체질에 따라 그 시기가 빨리 찾아오거나 늦게 찾아올 수는 있지만, 피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2017년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해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 2023년 평균 84.3세인 기대수명 역시 점차 늘어나 2030년에는 여성 88.4세, 남성 83.0세로 평균 85.7세, 2050년에는 여성 90.9세, 남성 86.8세로 평균 88.9세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생애주기가 늘면서 헬스케어의 패러다임도 변하고 있다. 질병 치료 중심에서 건강수명 시대로 전환되면서 완치가 아닌 꾸준한 관리가 건강을 지키는 데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노년기 건강을 위협하는 대표 질환은 만성질환이다. 노화로 인해 심장이 확장되고 심벽은 두꺼워지며 심방과 심실이 조금씩 커지는 등 문제가 생기면 고혈압, 심부전, 허혈성 심질환, 부정맥 등 심혈관계 질환이 발병할 수 있다. 고혈압, 비만, 당뇨병 같은 질환을 이미 앓고 있는 경우라면 만성질환 자체가 심장에 영향을 줘 만성심부전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천식·만성폐기종·폐렴·폐암 등의 폐질환, 골다공증·관절염 등의 뼈관절질환, 신장·비뇨기계 질환 같은 만성질환도 노년기 건강을 위협한다.
현대사회가 고령화사회로 들어서면서 만성질환으로 인한 건강 문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만성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전체 사망의 81%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OECD와 WHO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15억 명 이상의 환자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고, 60세 이상 노년층의 질병 발생 중 50% 이상이 라이프스타일 개선을 통해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고 분석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생활 습관 관리 등으로 예방 가능한 만성질환자는 2010년 기준 1137만 명이다. 50~75세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고혈압 50%, 당뇨병 20%, 고지혈증 20%, 암질환 7% 내외로 고령자 대부분은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결국 만성질환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유병 장수의 핵심이자 노년기 삶의 질을 결정한다.
만성질환을 앓는다고 해서 건강하지 않거나, 반드시 사망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만성질환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건강하게 생존하는 경우도 많다. 조기에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을 진단해 꾸준히 관리하고 균형 잡힌 식사와 질환별 맞춤 운동을 통해 근육 감소를 늦춘다면 만성질환이 있더라도 삶의 질이 낮아지거나 조기 사망에 이르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만성질환 조기 관리는 비단 노년층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젊은 층에서도 만성질환 환자의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20대 중 당뇨로 치료받은 환자 수는 약 4만2657명, 고혈압으로 치료받은 환자 수는 4만2798명으로 같은 해 전체 20대 인구수 대비 1.3%가 당뇨나 고혈압으로 치료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대비 당뇨 환자 증가율을 살펴보면 80세 미만 연령대 중 20대가 47.7%로 가장 많이 증가했으며 60대가 31.1%, 10대가 26.6% 순서로 많이 증가했다. 30대의 경우도 19%가 증가했으며, 0~9세도 18.1% 증가하는 등 젊은 층에서의 당뇨 환자 증가 추세가 뚜렷하게 확인된다. 이처럼 젊은 층에서 만성질환자가 증가하는 이유로는 미디어, SNS를 통한 먹방, 달고 짠 것을 번갈아 먹는 ‘단짠’의 유행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노인층의 질환으로만 여겨졌던 만성질환이 젊은 층에서도 급속도로 환자가 늘고 있는 만큼 지속적인 건강관리 체계 구축이 더욱 절실하다.
만성질환 관리가 가져온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
노년층뿐 아니라 젊은 층에서도 만성질환 발병률이 높아지면서, 유병장수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에 디지털헬스케어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헬스케어는 의료 영역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개인 건강과 질병에 맞춰 의료 서비스나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 또는 기술을 말한다. 헬스케어는 넓은 의미의 건강관리에는 해당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적용되지 않는다. 반면 디지털헬스케어는 건강관리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해 비대면, 대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즉 개인의 건강과 의료에 대한 정보, 기기, 시스템, 플랫폼을 다루는 산업 분야를 의미하며, 이는 건강 관련 서비스와 의료 IT가 융합된 종합 의료 서비스로, 질환 예방과 관리에 유용하다.
만성질환은 디지털헬스케어를 잘 적용할 수 있는 질환 중 하나다. 만성질환은 6개월 혹은 1년 이상 증세가 장기간 지속되는 질환을 지칭한다. 대표적인 만성질환으로는 심장질환, 뇌졸중, 고혈압, 당뇨, 암, 관절염, 비만, 호흡기질환 등이 있다. 만성질환은 한번 발병하면 건강한 상태로 되돌릴 수 없으며, 신체적 기능에 손상을 입혀 일상 활동에 제한을 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통증, 심리적 스트레스 등을 유발한다.
만성질환은 연령 외에 건강행태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건강행태란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행동으로 연령, 흡연, 음주, 비만, 신체 활동 같은 건강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을 지칭한다. 즉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꾸준한 관리가 중요한 질병인 셈이다.
만성질환 관리는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왔다. 질병 치료 중심에서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는 사전 진단과 예방으로 변화한 것이다. ICT 발전에 따라 헬스케어 서비스는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졌으며, 서비스 과정의 단순화로 시간과 비용 절감도 이뤄졌다.
전 세계를 강타하는 만성질환 진료 트렌드
예방 중심의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 변화는 전 세계에 다양한 만성질환 진료 트렌드를 이끌었다.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이 시행되었으며, 보건의료와 ICT를 융합한 디지털헬스케어 활성화 정책이 적극 추진됐다. 또 홈 케어 서비스가 활성화됐으며, 언제 어디서든 질환 관리가 가능하도록 휴대가 간편한 스마트 의료기기도 속속 개발됐다. 이는 모바일기기 및 원격 모니터링과 연계되어 통합적 질병 관리를 가능하게 했다.
미국은 디지털헬스케어 선두 주자로 다양한 의료 혁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빅데이터 구축과 다양한 규제 개혁을 통해 민간 중심의 헬스케어 생태계 조성을 유도한 것이다. 미국의 원격의료 시장은 건강관리업체들이 주도하면서 민간 보험 업체와 의사들이 서로 이해관계를 절충하고 있다. 특히 2020년 본격 확산된 코로나19를 계기로 원격의료 추진에 박차를 가했다. 원격의료 시스템을 통해 가정에서 상시에 수집된 개인의 생체 및 질병 정보를 실시간으로 의료기관에 전송한다. 의료진은 이를 바탕으로 질병에 대한 사전 진단 및 예방 조치, 개인 맞춤형 질병 치료, 퇴원 후 홈 케어를 통한 감염 및 재발을 방지한다.
유럽 또한 세계적 추세에 발맞춰 보건의료와 ICT를 융합한 디지털헬스케어 활성화 정책을 적극 추진한다. 유럽은 데이터를 의료산업 디지털 전환의 필수 자원으로 강조했는데, 유럽인 3억 명의 데이터 표준화가 목표다. ICT를 기반으로 의료 효율성을 개선해 환자와 의료 전문가의 이해 능력 향상, e-헬스 서비스 간 상호 운용성 개선 등을 추구하며 자체 정밀의료를 통해 새로운 도약에 나섰다.
중국도 의료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원격의료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앞선 미국, 유럽과 마찬가지로 정밀의료에 대한 토대를 마련해 왔다. 2014년에는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까지도 온라인 병원 설립, 온라인 처방전 관련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정부도 ‘4차 산업혁명 기반 헬스케어 발전 전략’, ‘바이오헬스 산업 추진 전략’ 등을 통해 정밀의료, 스마트 병원 구축 등을 추진했다. 홈 케어 서비스 역시 시행했는데, 사물인터넷에 기반한 스마트 홈과 연계된 클라우드 기반 홈 케어 서비스를 통해 고령자의 건강 상태와 일상 활동에 대한 상시적 모니터링과 적시적 관리를 진행했다. 이는 일상 활동 데이터를 수집·전송하는 활동 센서를 장착하고 이를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 PC 등과 연동해 집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생활 패턴을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응급안전돌보미 서비스인 ‘독거노인 U-care 서비스’를 2008년부터 시행해 오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질환 관리가 가능한 간편 스마트 의료기기도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웰체크가 있다. 웰체크는 고혈압·당뇨환자가 모바일로 간편하게 혈당과 혈압, 체중을 관리할뿐더러 평소 진료받는 병원의 주치의가 입력한 데이터를 확인한 뒤 올바른 치료 계획을 세워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앱이다. 집에서 건강관리를 하기 어려울 때도 주치의가 환자 상태를 파악해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도와준다. 만성질환자에게는 규칙적인 약 복용뿐 아니라 축적된 혈압, 혈당, 상황별 분석 결과가 중요하다. 이를 주치의와 함께 확인하면서 개인 맞춤형 진료를 함으로써 일상에서 만성질환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만성질환 관리, 디지털헬스케어의 격전지로 부상
한편, 디지털헬스케어 분야는 의료 데이터 가명 처리 기술, 스마트 헬스케어 기술, 의료 AI 기술 등 다양한 형태로 구체화되고 있다. 실제로 의료진이 검진, 판독 등을 통해 만들어낸 텍스트를 AI가 처리하고, 의미 있는 정보를 추출해 정리하는 것은 이미 그 효용을 인정받고 있다. CT나 MRI 등의 의료 영상을 판독해 결과 텍스트를 생성하거나 의료 현장에서 오가는 대화를 텍스트로 정리해 주는 멀티모달 기술도 전 세계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만성질환 데이터 사업의 일환으로 AI 학습용 데이터를 확보하는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만성 콩팥병과 같은 대표 만성질환의 합병증 예방을 위해 약물 치료와 위험인자 교정 등 지속적 관리를 돕고 합병증 예측을 통한 맞춤형 치료를 위한 AI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이처럼 디지털헬스케어 중 가장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인공지능 의료기기 분야다. 우리나라는 선발 주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우수한 성과를 보유하고 있다.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만 해도 140건에 이른다. 만성질환 관리 시장이 디지털헬스케어 격전지로 떠오르면서 빅데이터를 보유한 주요 통신사들도 디지털헬스케어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개인 데이터 기반 맞춤형 의료 서비스가 만성질환자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바, 디지털헬스케어의 잠재력에 많은 이가 기대를 걸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