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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Review] 현실에 발을 딛고

삶이 버거울 때 열어 보아야 할 두 작품.

마지막과 시작의 분기점에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이어령 / 열림원

정지환 에디터

12월이 가까워지면 막연히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이 식상한 고찰은 나름의 연례 행사다. 1년 중 수많은 마지막을 경험했음에도 12월에 떠오르는 마지막은 어쩐지 무겁다. ‘올해의 나는 12월에 죽는다’는 생각 때문일까. 올해의 내가 태어난 1월이 까마득하듯, 올해의 내가 생을 마감할 날이 머지않았다.

‘마지막’을 죽음과 엮은 건 이 책을 읽고 난 이후다.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수업에서 육신과 영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인간을 삼원론으로 설명하며 육신을 컵에, 컵의 공간을 영혼에, 그 안에 채우는 무언가를 마인드에 비유한다. 마인드를 비워야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설명하기엔 내용이 길다.

한 해를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것을 채웠는지 돌아본다. 컵을 깨듯 육신을 깨뜨린다면 내 안에 든 무언가를 쉽게 알겠지만, 아직 살아 있는 탓에 천천히 떠다 버릴 뿐이다. 또다시 태어날 내년의 나를 위해 채운 것을 덜어낸다. 12월이 가까워지고 죽음이 생각난 김에.

 


 

‘언러키’한 우리의 일상

언러키 스타트업

정지음 / 민음사

김보미 에디터

<젊은 ADHD의 슬픔>으로 이름을 알린 정지음 작가의 첫 소설이다. ‘언러키 스타트업’이라는 제목과 화려한 표지보다 먼저 눈에 띈 건 ‘시트콤 소설’이라는 문구다. 정지음 작가의 SNS를 보며 공감하거나 웃음을 터뜨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책을 집어 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소설은 5인 미만 사업장인 ‘국제마인드뷰티콘텐츠그룹’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성인지감수성은 최악, 폭언은 애교, 고성은 일상,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대표 ‘박국제’와 각자의 사정으로 회사를 떠나지 못하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유머러스’라는 표현을 썼지만,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왠지 모르게 슬퍼진다. 소설 속 인물들의 ‘언러키’한 일상이 남 일 같지 않아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모두가 이런 상황을 감내하며 살아가는구나’라는 묘한 위로를 받게 된다. ‘기분이 나쁠 때 취하는 포즈’를 아무리 따라 해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면, 이 소설을 곁에 두고 조금씩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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