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과 남자의 로망을 모두 실현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카레이서이자 페라리 오너스 클럽 코리아 의장, 심 레이싱 문화를 개척하는 DCT레이싱 팀 감독까지. 그가 이룬 모든 것은 차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됐다.
박재성
· DCT레이싱 감독
· 베니카 공동대표이사
· 페라리 오너스 클럽 코리아 의장
카레이서로 시작해 대단한 업적을 이뤘다. 과정이 궁금하다
시작은 단순히 차를 좋아해서였다. 더 재미있고 안전하게 운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카레이싱에 발을 들였다. 어린 시절 버스를 타면 항상 운전석 뒷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에선 버스 기사가 운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기어를 변속하거나 핸들을 돌리는 모습 등 운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차를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도 했다. 그렇게 구매한 첫 차가 티코다. 당시 대학생이 차를 산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차를 소유함으로써 운전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운전에 대한 애정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차를 경험하는 기회로 이어졌다. BMW, 벤츠, 페라리까지 많은 차를 운전했고, 현재는 페라리 오너스 클럽 의장으로 8년째 활동 중이다. 운전을 좋아했던 것이 출발점이었지만, 지금은 자동차와 모터스포츠에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됐다.
흔히 심 레이싱은 레이싱을 체험하기 위해, 또는 다양한 차량을 체험하기 위해 즐긴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실제 레이서이면서 슈퍼카를 여러 대 보유했는데도 심 레이싱을 즐기는 이유가 궁금하다
필요해서 시작했다. 국내 서킷은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국제 대회는 상황이 다르다. 2019년 멜버른에서 열린 페라리 챌린지 데뷔전에 출전하려고 했는데, 이 대회는 도심 서킷으로 평소에는 주행이 불가능했다. 국내에는 연습 환경이 없던 상황에서, 당시 레이싱을 가르쳐주던 김종겸 드라이버가 심 레이싱을 권유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서킷을 가상으로 주행하며 코스 인지력을 높일 수 있었다. 두 달 동안 매일 멜버른 서킷을 연습하며 코스 적응력을 키운 덕분에 데뷔전에서 해당 클래스 우승, 클래스 전체 4등을 했다. 페라리 챌린지 측에서도 놀랄 만큼의 성과였다. 심 레이싱이 리얼 모터스포츠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몸소 느꼈다.
심 레이싱 팀까지 창단했다
DCT 레이싱 팀 창단 계기는 두 명의 젊은 선수를 만난 것이다. 2019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이들이 뛰어난 심 레이싱 실력을 보여줘 직접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들의 잠재력을 지원하고자 국내 최초의 심 레이싱 팀을 창단했다.
초기에는 심 레이싱 위주로 시작했지만, 이후 실차 드라이빙 기회를 제공하며 팀을 확장했다. 팀에서 사용하는 차량은 개인적으로 구매해 선수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심 레이싱이 실제 레이싱과 얼마나 유사한가?
심 레이싱의 유사성은 사용 장비와 프로그램에 따라 달라진다. 아세토 코르사는 확장성이 뛰어나 거의 모든 서킷을 포함하지만 디테일이 부족해 유사성이 60~70% 수준이다. 아이레이싱은 서킷을 레이저 스캔으로 구현해 고저 차와 트랙 폭 등이 실제와 동일하며, 유사성이 80%에 이른다.
F1 드라이버들이 사용하는 시뮬레이터는 95%의 수준으로 유사하다. 이는 F1 팀들이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사용하며, 실제 레이싱 환경과 거의 일치한다. 일반 사용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심 레이싱 장비로도 60~80% 수준의 유사성을 체감할 수 있다. 실제로, 김규민과 김영찬 드라이버는 심 레이싱으로 기술을 연마해 N1 클래스에서 각각 2년 연속 챔피언과 준우승을 기록했다.
F1 팀들은 심 레이싱 전문 드라이버를 고용해 서킷 데이터를 분석하고, 세팅 값을 도출해 실제 드라이버들이 경기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신규 서킷이나 변경된 환경에서도 심 레이싱을 통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 이미 심 레이싱은 리얼 모터스포츠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술과 환경이 발전하면서 실제 레이싱과의 유사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그 정도로 밀접한 줄은 몰랐다
흥미로운 건, 실제 레이싱을 하던 사람이 심 레이싱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차량에서는 몸의 움직임, 사운드, 바닥의 감각 등 다양한 피드백이 있지만 심 레이싱에서는 대부분 이런 정보가 스티어링 휠의 진동과 화면으로만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심 레이싱을 접한 레이서들이 이질감을 느껴 적응하지 못하기도 한다.
반면, 심 레이싱부터 시작한 이들은 실제 레이싱에 쉽게 적응한다. 심 레이싱은 스티어링의 피드백만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훈련을 제공하며, 실제 차량에서 몸의 움직임과 바닥에서 전달되는 추가 정보까지 더해지면 오히려 운전이 더 쉬워진다.
예를 들어, 심 레이싱만 경험한 한 드라이버가 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인제스피디움 트랙에서 열린 테스트에서 가장 빠른 기록을 냈다. 다른 참가자들의 실제 모터스포츠 경험이 더 풍부했는데도 말이다. 이는 심 레이싱이 실제 레이싱의 핵심 기술을 훈련하는 데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레이싱 현업 관계자들이 바라보는 심 레이싱의 전망은 어떠한가?
심 레이싱은 현재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지만, 모터스포츠의 미래로 주목받고 있다. F1을 주관하는 FIA 관계자들도 심 레이싱이 레이싱의 미래를 이끌 것으로 전망할 정도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e스포츠의 가능성을 인식해 '올림픽 e스포츠 대회'를 창설했다. 이 대회는 2025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릴 예정이며, 모터스포츠 종목이 포함된다. 심 레이싱이 올림픽이라는 국제대회의 위상까지 오르는 셈이다. 도쿄 올림픽 때 처음 도입된 버추얼 시리즈와는 규모와 무게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는 심 레이싱이 단순한 게임을 넘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활약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심 레이싱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접근성이다. 실제 서킷에서 레이싱을 즐기려면 타이어 교체, 연료비, 트랙 사용료 등으로 1회에 최소 150만~200만원이 소요된다. 반면, 심 레이싱은 시간당 8000원에서 3만원으로 훨씬 경제적이다. 또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체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가족간 유대감도 높일 수 있다. 특히, 서킷이 주거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국내 상황에서 심 레이싱은 가까운 도심에서도 손쉽게 체험할 수 있어 시간적, 물리적 제약이 적다.
접근성이 높아진 만큼 대회에 아마추어도 많이 참여할 것 같은데?
그렇다. 국내 주요 대회인 CJ 슈퍼레이스와 현대 N 페스티벌 중, 특히 현대 N 페스티벌에서는 아마추어 클래스인 N2 클래스에서만 약 80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이로 인해 결승전 그리드 제한으로 일부 선수들이 결승에 오르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이 같은 대중적 관심 증가는 여러 요인에 기인한다. 특히, 인플루언서들의 참여가 크다.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윤석로, 강병희, 뽀구미 같은 인플루언서들이 대회에 출전하며 모터스포츠에 대한 인지도를 높였다.
한 대회에서는 유튜브 중계 뷰가 20만 회를 넘어서며 기존 대회의 1~2만 회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관심을 끌었다. 인플루언서들의 활약으로 팬들이 대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현장 방문과 관람으로 이어졌다. 대회장은 이제 레이싱뿐만 아니라 팬들과의 교류를 포함한 다양한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슈퍼카 오너로서 심 레이싱을 즐긴다. 주변에 비슷한 경우가 있나?
비슷한 사례는 많지 않다. 레이싱을 실제로 즐기는 사람들은 심 레이싱에 관심을 보이고, 연습 목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단순히 슈퍼카를 소유한 사람들은 심 레이싱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편이다.
다만, 슈퍼카 오너 지인들과 함께 심 레이싱 대회를 연 적이 있다. 선입견을 갖던 지인도 막상 심 레이싱을 타니 땀을 흘리며 몰입하더라.(웃음)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이런 대회를 열어 심 레이싱의 매력을 알리려고 한다.
평소에도 심 레이싱을 자주 즐기나?
아무래도 필요에 의해 심 레이싱을 시작하다 보니 취미처럼 자주 즐기진 않았다. 이제는 집에 가져다 놓고 자주 즐기려고 한다.(웃음)
심 레이싱 입문자를 위해 조언을 하자면?
처음부터 대단한 장비를 갖출 필요가 없다. 심 레이싱이 자기에게 맞는지 레이싱 체험장에서 먼저 체험하는 것을 추천한다. 레이싱 자체의 재미에 빠지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또 아이레이싱이나 아세토 코르사 같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말고, 그란투리스모 시리즈를 먼저 추천한다. 그란투리스모는 아케이드 성향이 짙은 게임이다. 보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게임을 즐기면서 심 레이싱 자체에 재미를 들이길 바란다.
심 레이싱의 매력에 빠져 장비를 구매하려 한다면, 로지텍 브랜드의 저렴한 세트를 먼저 구매하길 권한다. 스티어링 휠과 페달 세트로 60만원 안팎이니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입문할 수 있다. 입문 장비로 즐기다 조금씩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좋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후대 사람들에게 “이 사람 덕에 우리나라 모터스포츠업계가 발전했다”라는 말을 듣기를 바란다. 심 레이싱의 발전 가능성이 없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다. 단순히 투자로 자산 가치를 높이기보다 무형의 자산에 투자해 모터스포츠 문화 부흥을 이끌고 싶다.
DCT레이싱 팀 감독 박재성의
심 레이싱 장비
크게 세 세트의 심 레이싱 장비를 소유한다. 소개하는 세트는 두 번째로 좋은 구성이라고. 가장 좋은 세트는 DCT레이싱 공식 파트너사인 레이싱 게임장 PSR에 보관했다고 한다.
하나의 장비만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면?
페달을 업그레이드하겠다. 이미 다른 장비는 최상급 장비를 사용 중이다.(웃음) 페달은 지금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네덜란드의 심 레이싱 장비 브랜드 휴싱크빌드(Heusinkveld)의 페달이 정말 엄청나다. 액셀이나 브레이크를 개별로 구매하는 데 각각 400만원 가까이한다. 휴싱크빌드의 페달은 유압 조절식이다. 각각 개별로 세팅 값을 설정할 수 있어 원하는 차량의 세팅 값을 입력하면 실제 차량과 동일한 페달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사실상 그 페달 하나만 사면 페달은 더 이상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PC, 모니터
심 레이싱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컴퓨터 사양도 중요하다. 해외 플레이어와도 함께 하려면 인터넷 지연 시간(레이턴시, 핑)이 균일하게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넷 환경이 우선적으로 중요하고, 게임을 안정적으로 즐기려면 RTX 3090이나 RTX 4090 Ti 같은 고사양 그래픽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높은 사양으로 세팅하면 컴퓨터만 500만원 정도.
심 레이싱을 제대로 즐기려면 트리플 모니터로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실제로 아마추어 레벨의 심 레이서들도 트리플 모니터는 갖추는 편이라고. 32인치 모니터 3개를 연결해 빈틈없이 시야를 확보했다. 모니터 3대를 합해 150만원 정도.
휠베이스, 스티어링 휠
심 레이싱의 핵심 장비. 차량의 움직임과 떨림 등 심 레이싱으로 간접체험을 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은 이 장비에서 나온다. 모두 핀란드의 하이엔드 심 레이싱 장비 제조사 시뮤큐브(Simucube) 제품. 현존하는 장비 중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휠베이스는 300만원, 스티어링 휠은 130만원 정도.
프로파일, 시트
휠베이스부터 모니터, 페달 등 심 레이싱 장비를 세팅한다. 보통 거치대라고 부른다. 이 장비는 양산품이라 200만원 선이지만, 커스텀 제품은 400만원 정도까지 가격이 오른다. 시트는 시뮬레이싱 전용 시트로 100만원 정도.
컨트롤 박스
페라리 챌린지 차량 내부 기능에 맞춰 맞춤 제작한 컨트롤 박스. 실제 레이싱 연습을 위해 심 레이싱을 활용하는 만큼 심 레이싱 장비 환경도 최대한 동일하게 구성했다고. ABS, 연료 관리, 와이퍼, 엔진 스타트 등 실제 레이싱 차량에서 사용하는 기능을 시뮬레이터에 구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