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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웅이라는 예술 [인터뷰]

연기로 그려온 삶을 캔버스로, 캔버스에 흩뿌린 세계를 다시 연기로. 박기웅이라는 예술의 무대는 광활하다.

 

ⓒ 화이트스톤갤러리
ⓒ 화이트스톤갤러리

박기웅 작가는

배우와 미술작가를 넘나드는 아티스트. 2005년 영화 데뷔 이후 20년간 배우로 활동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특히, 2012년 방영한 드라마 <각시탈>에서 ‘기무라 슌지’ 역을 맡아 선과 악을 오가는 연기로 호평받았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미술작가로도 활발히 활동한다. 2019년 아트페어를 시작으로 개인전을 꾸준히 개최했으며, 2021년 중국 상하이 <WCG 아트 플레이> 진출과 <한국회화의 위상전> 특별상 수상 등 국내외에서 인정받았다. 2023년 롯데월드타워에서 개최한 개인전 <48빌런스>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명작 속 빌런 48인을 그린 작품을 선보인 전시로, 배우로서의 경험을 미술로 풀어내며 3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모았다.

 

화가이자 배우, 박기웅의 근황이 궁금하다

어느 쪽이든, 잘 지내고 있다. 화이트스톤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PARK KI-WOONG: Future Superhero>를 성황리에 마쳤고, 연말까지 크고 작은 전시와 브랜드 협업이 이어질 예정이다. 배우로서도 드라마와 영화 촬영 준비에 여념이 없다. 영화 촬영을 위해 해외 로케이션 일정이 잡혀 있기도 하다. 화가와 배우 활동을 병행하기 위해 시간 조율과 체력 관리에 힘쓰고 있다.

 

배우라는 직업이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

한때는 배우와 화가가 분리된 영역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병행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으며, 억지로 나눠서도 안 되는 일이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배우’로서 연기하며 살았다. 배우로서의 삶을 그림에 녹이지 않는다면, 그건 온전히 나를 표현한 작업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티끌만큼의 거짓도 없는 그림을 그리자’라고 다짐했다.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떳떳한 예술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뒤로는 작업에 여유가 생겼다.

삶과 예술은 분리할 수 없지 않나. 마찬가지로 나의 이야기를 영화라는 언어와 미술이라는 언어로 풀어낸다고 생각한다.

 

‘Stanislavski_S System’, 2025, Oil on Linen, 130.3x162.2cm ⓒ 화이트스톤갤러리<br>
‘Stanislavski_S System’, 2025, Oil on Linen, 130.3x162.2cm ⓒ 화이트스톤갤러리
Future Super hero_130.3 x 162.2 cm_Oil on linen_2025&nbsp;ⓒ 화이트스톤갤러리<br>
Future Super hero_130.3 x 162.2 cm_Oil on linen_2025 ⓒ 화이트스톤갤러리

 

전시 <PARK KI-WOONG: Future Superhero>에선 어떤 메시지를 담았나?

대중이 공감할 만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나의 예술 언어로 풀어내고 싶었다. 어린 시절엔 응당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 믿는다. 그런 어린 세대에겐 응원과 지지가 필요하다.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들인 이들에게 격려를 보내고 싶었다. 사회라는 거대한 구조에서 개개인은 작은 조각에 불과하지만, 각자의 인생에선 누구나 찬란한 주인공이라고.

 

지난 전시에 이어 이번에도 ‘빌런’을 그렸다. 빌런에 대한 애착이 엿보인다

배우로서 여러 차례 빌런을 연기했다. 빌런에 이입하다 보면 그 캐릭터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납득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물론 악행을 이해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빌런을 하나의 매개로 삼아 다채로운 시선을 가지고 싶었다. ‘히어로’라 불리는 인물의 행동은 과연 옳은 것일까, 사회적으로 용인된 폭력은 아니었을까. 이렇듯 빌런의 관점에서 입체적 논점을 제시하고 싶었다.

 

ⓒ 화이트스톤갤러리<br>
ⓒ 화이트스톤갤러리

 

과거에는 ‘배우’로 불리는 것이 익숙했다.

요즘엔 나 스스로 ‘연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박기웅입니다’라고 소개한다.

화가 박기웅의 철학은 무엇인가?

솔직함이다.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다. 꾸미려 할수록 예술은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은 대부분 100년도 채 살지 못한다. 이토록 짧은 생애 동안 예술가 혼자만의 힘으로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예술가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닌, 대중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솔직하고 꾸밈없는 이야기를 전할 때 관객이 공감할 여지가 생긴다. 작품으로 그들과 교감하는 순간, 비로소 그 예술이 완성된다고 믿는다.

 

‘예술’이라는 동일 카테고리로 묶더라도, 미술과 연기는 엄연히 다른 분야다. 각기 다른 예술을 넘나드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 특히 예술 간 ‘호흡’ 차이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미술은 하나의 세계관이 작품으로 구축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뭉근한 호흡으로 느긋하게 임해야 한다. 빠른 피드백을 원한다면 미술 작업은 포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될 정도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예술을 경험하며 배운 점도 많다. 수년 전,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오른 한 작가의 미디어아트 속 연기를 보고 콧방귀를 뀐 적이 있다. 상업영화업계에 몸담고 있던 내 기준에서 배우의 연기 완성도가 너무나 조악했던 탓이다. 지금은 영화 언어와 미술 언어의 차이를 이해하고 관점을 달리 본다. 그 작품 속 의도된 여백과 개념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배우로서 연기할 때는 알지 못했던 지점을, 미술이라는 다른 예술 영역에서 배웠다.

 

‘배우 박기웅’을 기억하는 대중이 ‘화가 박기웅’의 작품을 접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길 바라나?

배우로서 내가 출연한 작품을 바라보던 관객이, 내 미술 작품과 천천히 대화하길 바란다. 짧은 영상물을 보듯 단순히 훑는 것이 아니라, 시를 읽듯 작품과 깊이 조우하길 바란다. 관객이 작품과 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그에 걸맞은 작업물을 만드는 것이 내 몫이라 생각한다.

 

배우로서도, 화가로서도 많은 것을 이룬 셈이다

나는 그저 연기하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연기든 미술이든, 각각의 언어로 내 이야기를 전달할 뿐이다. 무엇에 도달했는지 보단 무엇을 지속적으로 전달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행보는?

최근 몇 년 동안은 연기보다 미술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제는 다시 배우로서 활동 폭을 넓혀볼 계획이다. 미술과는 또 다른 연기 언어로 나만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선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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